스쿼터(Squatter)의 역습: 내 집을 비운 사이 자물쇠가 바뀌어 있다면?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 내 집에 들어와 자물쇠를 바꾸고 “내가 여기 세입자다”라고 주장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상식적으로는 당장 경찰이 그를 끌어내야 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집주인이 자기 집의 자물쇠를 바꿨다가 오히려 체포되는 황당한 사건까지 발생하죠.
오늘은 최근 미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회적 골칫거리가 된 스쿼터 문제의 역사적 배경과 법적 허점,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해 뇌과학적 분석만큼이나 흥미로운 법학적 관점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황당한 실화: 내 집에서 내가 체포되는 이유
2024년 뉴욕, 100만 달러 상당의 주택을 소유한 아델 안달로는 한 달 만에 방문한 자신의 집에서 낯선 남자를 마주했습니다. 남자는 당당하게 자신이 세입자라고 주장하며 나가지 않았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결과는 허망했습니다. 경찰은 “이 남자가 30일 이상 거주했음을 입증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남자가 대답하지 못하자 일단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안달로가 열쇠공을 불러 자물쇠를 바꾸자, 스쿼터는 다시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안달로는 911에 신고했지만, 정작 수갑을 차고 연행된 사람은 집주인 안달로였습니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 시행 중인 세입자 보호법은 세입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전기나 가스를 끊거나 자물쇠를 함부로 바꾸는 행위를 ‘불법 퇴거(Illegal Eviction)’로 엄격히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배경: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미국 부동산 법 체계 내에서 이러한 무단 점거 권리가 힘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점유가 법의 9할이다’라는 서구 법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농경 사회였던 고대 로마의 ‘우스카피오(Usucapio)’ 개념은 땅을 놀리는 것을 사회적 낭비로 보아 실점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주곤 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스쿼팅의 역사’로 세워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862년 제정된 **홈스테드법(Homestead Act)**은 21세 이상 성인이 빈 땅에 가서 5년간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 그 땅의 주인이 되게 해주었는데, 미 국립 기록소(National Archives)의 문서를 보면 당시 개척자들이 곧 최초의 합법적 스쿼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 개념이 바로 **점유 취득 시효(Adverse Possession)**입니다. 소유자가 자신의 권리를 장기간 행사하지 않는다면, 법 또한 그 권리를 끝까지 지켜주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집’이라는 안식처, 그 당연한 상식이 흔들릴 때
사실 여러 나라를 거치며 살아온 저로서는 미국의 이러한 상황이 처음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현재 미국에서 세입자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스웨덴에 있는 저희 소유의 아파트를 렌트해주고 있는 ‘임대인’이기도 합니다.
만약 몇 년 뒤 스웨덴으로 돌아갔는데,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살며 자신이 세입자라고 우기는 상상을 하니 정말 눈앞이 깜깜하고 아찔해지더군요. 다행히 스웨덴은 이런 법적 분쟁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자본주의의 정점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삶이 팍팍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흔들리면 이런 기상천외한 문제들이 독버섯처럼 커질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현대의 스쿼터: 법적 회색 지대를 악용하는 지능형 범죄

과거의 스쿼터들이 생존을 목적으로 했다면, 현대의 그들은 법적 허점을 노리는 지능범에 가깝습니다. 위조된 계약서 한 장만으로 경찰의 개입을 막고, 평균 20개월이 소요되는 퇴거 소송 기간 동안 월세 한 푼 내지 않고 남의 집에서 당당히 거주합니다. 더욱 악랄한 것은 이들이 가짜 임대 광고를 올려 선량한 제3자로부터 보증금까지 갈취하는 ‘중복 사기’를 저지른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개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관리되지 않는 빈집을 마약 소굴로 만들거나 무단 개조하여 주변 이웃의 집값까지 동반 하락시키는 ‘경제적 전염병’의 발원지가 되기도 합니다. 집주인은 소송비와 재산세를 감당하며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는 명백한 경제적 재앙입니다.
반격의 시작과 사유 재산권의 보호
사태가 심각해지자 플로리다주를 필두로 미국 각 주 정부는 집주인의 신고 즉시 경찰이 스쿼터를 즉각 퇴거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이라는 외부의 자산을 침해받는 고통을 넘어, 우리는 때때로 삶의 근원적인 시련을 마주하곤 합니다. 타인의 무단 점거로 내 공간을 잃는 황당한 현실 앞에서 분능에 침잠할 것인지, 아니면 이 시련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답을 찾고 계신다면 제가 이전에 정리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니체의 극복: 왜 니체는 스승을 비판했는가?] 글을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고통을 바라보는 니체의 ‘긍정적 시선’이 예상치 못한 삶의 파도를 넘는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결국 내 소중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고, 잔디 관리 등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을 지속적으로 남기는 등 **’권리 위에 잠자지 않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